붕괴 위기의 NPT 체제와 고조되는 핵 위협, 국제사회가 직면한 무거운 책임
최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약 한 달간 진행되었던 핵확산방지조약(NPT) 재검토회의가 결국 아무런 성과문서도 채택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NPT 재검토회의는 2015년과 2022년에 이어 3회 연속으로 결렬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습니다.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회의에서 각국의 이해관계와 패권 다툼으로 인해 합의가 무산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지구의 평화를 지탱해 온 글로벌 핵관리체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위기적인 신호입니다. 냉전 종식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핵 위기 상황과 국제사회의 과제를 세 가지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짚어보고자 합니다.
이해관계의 충돌과 대국들의 핵 증강이 불러온 NPT의 신뢰성 실추
이번 회의가 결렬된 표면적인 원인은 이란의 핵 개발 문제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첨예한 대립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추구 및 개발을 금지하는 강력한 문구를 명기할 것을 요구한 반면, 이란과 러시아는 이에 거세게 반발하며 삭제를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담은 초안 기술 역시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NPT 체제 자체를 흔드는 강대국들의 모순적인 태도에 있습니다. NPT는 미·러·중·영·프 5개국에 법적인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대신, 이들에게 성실하게 핵군축 협상에 임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 대국은 군축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외면한 채, 오히려 핵전력을 증강하는 역행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 세계 핵무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의 핵탄두 배치 수를 제한하던 마지막 보루인 핵군축조약마저 실효시키며 스스로 통제의 끈을 놓아버렸습니다. 3회 연속 회의 결렬은 이처럼 대국들이 빚어낸 신뢰 실추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핵을 앞세운 위협의 횡행과 다국간 군축 틀 마련의 시급성
최근 국제 정세는 힘의 논리에 의해 핵무기가 타국을 굴복시키고 위협하는 수단으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위험한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지속하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시사해 왔습니다. 심지어 이번 NPT 재검토회의가 열리는 기간 중에도 동맹국인 벨라루스와 함께 핵무기 사용을 상정한 대규모 군사연습을 감행하며 국제사회를 향한 위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횡포에 위기감을 느낀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핵보유국들마저 방어 차원의 핵전력 증강으로 돌아서며 군비 경쟁의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중국 역시 급속도로 핵탄두를 늘리며 패권 경쟁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미·중·러 3개국이 참여하는 다국간 핵군축 협상을 제안했으나 중국이 이를 거부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단선적인 진영 논리를 넘어, 급증하는 중국의 핵전력까지 아우를 수 있는 다자간 핵군축의 새로운 틀을 구축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합니다.
핵보유국의 '선제사용 금지' 결단과 피폭국의 멈추지 않는 호소
1970년에 발효되어 191개 국가와 지역이 참여하고 있는 NPT는 지구의 파멸을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법적 기반입니다. 따라서 핵 보유를 기득권으로 누리고 있는 5개 강대국은 무너져가는 이 체제를 재건하고 국제 신뢰를 회복해야 할 막중한 도덕적, 정치적 책임이 있습니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으로서, 모든 핵보유국은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제사용 부불선언(No First Use)'을 공식화하고 실질적인 핵 리스크 저감 조치에 착수해야 합니다.
아울러 NPT를 탈퇴하고 독자적인 핵·미사일 개발 고도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북한의 행보는 동북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한 요소이며,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와 단호한 대처는 당연한 일입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전쟁 중 핵무기의 참상을 직접 겪은 피폭국인 일본을 비롯한 평화 지향 국가들은, 국제 정세가 아무리 냉혹하게 흘러갈지라도 유엔 등 다자 외교 무대를 통해 핵군축의 당위성과 인류 공멸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확산시키고 호소하는 글로벌 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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